신약 소설 닷핵
야스히코를 구하기 위한 단서는 『The World』에 있다.
그때, 야스히코는 소녀와 마주쳤을 때 중얼거리고 있었던 걸 나는 기억하고 있었다.
“……설마, 소문은 사실이었단 말인가?”
야스히코는 뭔가 짚이는 게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소문이 돌아다닐 정도로 『The World』에 침투되어 있었다.
먼저 루트 타운을 걸어서 여러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으려고 했다. 소문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FMD를 쓰고, 나는 『The World』에 로그인했다.
장소는 이전과 같은 마크 아누.
CC사의 공식 메일로 에리어 이동이 제한되었다는 통지가 있지만, 이는 오히려 안성맞춤이었다. 넓은 범위를 움직이지 않고 끝낼 수 있으니까.
거리는 지난번처럼 모험자들로 북적였다.
나는 거리의 중심부에 가려다가,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갈색의 여전사가 내 앞에 섰다.
아니, 틀렸다. 나는 캐릭터를 만들 때 대강 훑어본 PC의 직업에 관한 설명서의 텍스트를 떠올렸다. 여전사라는 직업은 이 「세계」에는 없다.
커다란 검을 장비하고 있는 그녀는…… 「중검사」다.
내가 그녀에게 주목한 것은, 움직임이 아무래도 기묘했었다.
부자연스럽게 이리저리 움직이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니, 돌아다니고 있지만, 마치 로봇 댄스 연기를 하는 것 같았다. 아마 초보 플레이어인 거겠지.
나의 경우에는 야스히코가 조작 방법을 알려줬으니 바로 조작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선도하며 조언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 같았다. 나의 시선을 알아챈 듯, 그녀는 움직이는 것을 그만두고 이쪽을 보았다.
“뭐야, 뭔가 할 말 있어?”
가시 돋친 어조로 말했다.
“아니, 아무것도..”
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보고 있던 것이 신경에 거슬린 모양이다.
그녀는 엄한 눈매로 나를 노려보다가, 곧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어. 너, 초보자지.”
단정스럽게 말했다.
“그래. 분명해. 그렇지?”
“……”
“실례구만. 응? 특별히 친절하게 가르쳐 주겠는데.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 건 매너 위반. 게임이건 현실이건 마찬가지라고. 알겠어?”
“……”
그렇게 말해도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내가 가만히 있자, 그녀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허리에 손을 대었다.
“그래서, 어쨌다고?”
“……”
“점점점이면, 다냐고! 정말이지……”
무언가 투덜거리면서, 그녀는 거리 중심부로 달려갔다.
아이고 하며 생각했다. 시시한 이유로 잣대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어디에든 있다.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원래 예정대로 시내에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눈에 띈 PC에게 일방적으로 말을 걸고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바로 진절머리가 나버리고 말았다.
이것이 온라인 게임이라는 점을 계산에 두지 않은 거였다. GIGA 같은 오프라인 전용 RPG 하고는 그게 결정적으로 달랐다. 친절한 게임 디자이너가 공략 힌트를 ‘슬며시’ ‘확실하게’ 통행인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아니다.
1시간이 지났을 때에는, 목표도 없는 상태에서 정보 얻기 같은 걸 하는 건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다.
자기 생각의 싱거움을 느끼고 터벅터벅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걷고 있자니, 다시 카오스 게이트까지 왔다. 루트 타운 주위를 한 바퀴 돌아온 것이었다.
무슨 일이람. 카오스 게이트 옆에는 아까 그 중검사가 있었다.
얼굴과 마주치지 않도록 돌아가려 했으나 늦었다.
“잠깐 기다려!”
그녀가 나를 누르듯이 손을 올렸다.
거리를 서성거리면서 조작에 익숙해졌는지, 아까보다는 움직임이 제법 부드러워졌다.
“……나 말이야?”
“그래, 너 말이야. 실은…… 나, 재밌는 워드 알고 있는데.. 같이 가준다면, 특별히 가르쳐 줄 수도 있어. 알고 싶니?”
“뭐가 재밌는데?”
“어? 뭐나면.. 그게…… 그러니까, 뭐, 여러 가지로..”
그녀는 왠지 우물거렸다.
“여러 가지 있다고. 그…… 여러 가지..”
수상하다.
나는 탈없는 대답으로 거절했다.
“수상하니까 그만둘래.”
“아, 그래. 별로 상관 없지만은..”
그녀는 외면했다.
“근데, 정말로 괜찮겠어? 이런 좋은 이야기, 좀처럼 없을 텐데. 꽤 여러모로 재밌는데 말이야. 꽤 아쉽네.”
힐끔힐끔 이쪽을 곁눈으로 보면서, 큰소리로 일부러 혼잣말을 했다.
서툰 연기였다.
그녀는 그 워드로 이동하기에는 무언가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와 동행하려는 거겠지. 이에 나는 말하였다.
“미안하지만, 좀 볼일이 있어. 수상쩍은 모험에 같이 하자는 건 못해.”
“별로 상관없지만. 혼자서 가볼까..”
목소리가 좀 떨리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알고 싶네. 꼭 알고 싶어.”
“그래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초보자는 솔직한 게 제일이야!”
우리는 멤버 어드레스를 교환했다.
“난 블랙로즈. 잘 부탁해.”
“나는 카이트.”
파티를 짜고 나서, 카오스 게이트의 메뉴를 열고, 그녀가 말한 ‘재밌는’ 에리어 워드를 입력했다.
Δ 서버 숨겨진 금단의 성역
전송된 앞은 짧은 다리 위였다.
우리는 석조 건물 앞에 서있었다.
나는 양쪽 문을 보고, 거기 옆의 블랙로즈를 보았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어?”
블랙로즈는 흠칫 놀라서 나를 뒤돌아보았다.
“이 안으로 들어가면 되는 거지?”
“그, 그래. 맞아! 자, 가자고.”
블랙로즈는 가슴을 펴면서, 딱딱한 움직임으로 문을 열어젖혔다.
나는 그녀를 따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내부는 텅 빈 교회처럼 되어 있었다.
중간까지 걸으면서, 나는 여기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 야스히코가 의식을 잃은 그 장소와 비슷한 것이다.
평온하다고 말해야 할지, 적요해야 하다고 해야 할지. 세상 모든 것에서 버려진 듯했다.
“있잖아.”
나는 앞을 지나는 블랙로즈에게 말을 걸었다.
그 순간, 그녀는 펄쩍 뛰면서 버둥버둥하며 무기를 휘두르기 시작해서 놀랐다.
“워워워. 워워워어? 뭐 뭐 뭐, 뭐야?”
보고 있으니 금방 안정을 되찾았다. 가슴에 손을 대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아. 심장 멎는 줄 알았네……”
그건 이쪽이 할 말이었다.
“뭐냐고.. 갑자기 말 걸지 말라니까. 매너 위반이야! 매너 위반!”
우리는 성당의 맨 앞줄로 갔다.
거기에는 소녀의 석상이 있었다. 양손, 양팔, 양다리, 허리, 목, 총 여덟 곳에 쇠고랑과 사슬이 달려있었다.
나는 석상의 얼굴을 보고 흠칫했다.
오르카와 같이 있었을 때 만난 소녀의 얼굴이었다.
이 여자아이는……
왜 이 석상이 여기에 있지?
블랙로즈는 숨을 죽이고 소녀상을 올려보다가, 불쑥 말했다.
“이거, 뭘까.. 왠지, 괴로워 보여……”
그때였다. 우리가 들어왔던 문이 몹시 거칠게 쾅 열리고, 한 PC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 소리에 놀라서 우리들은 돌아섰다.
들어온 것은 하얀 검사 PC였다.
하얀 망토 같은 장식품을 몸에 두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잘 보면 날개였다. 그 검사의 등에는 새처럼 순백의 날개를 갖추고 있었다.
입을 열자마자,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뭘 하고 있나?”
나와 블랙로즈는 얼굴을 마주 보았다.
“뭐라니……”
나는 대답했다.
“말할 시간은 없다! 여기는 위험해!”
검사가 가로막았다.
“뭐?”
“도망치라고 했을 테다!”
갑자기, 검사와 우리 사이의 공간이 일그러졌다. 색상이 반전되고, 노이즈가 발생하는가 하면, 일그러진 가운데를 찢듯이 몬스터가 출현했다. 오른손에 해골, 왼손에 검을 든 인간형 몬스터이다.
나는 흠칫했다.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고 느꼈다.
지금 것은 ‘사신’과 같은 출현 방법이었다.
“어서 도망쳐! 차아!”
검사는 그렇게 외치면서, 검을 뽑아들어 몬스터에게 덤볐다.
하얀 칼날이 번쩍이면서, 몬스터는 즉사하고 땅에 쓰러져 검게 변했다.
그러나 그때, 녹색의 육각형 효과에 휩싸이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벌떡 일어섰다.
블랙로즈가 비명을 질렀다.
검사가 외쳤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적…… 바이러스 버그야. 바이러스가 데이터를 고치고 있군. 이 녀석의 HP는…… 무한이다!”
몬스터가 왼손을 들어 올리며 힘차게 내리쳤다.
“크윽!”
검사는 공격을 피하다가 정면으로 맞았고, 성당 오른쪽 벽에 내동댕이치고 말았다.
이 일격으로, 그의 스테이터스가 붉어진 것을 알았다. 치명상을 입은 것이었다. 나는 오르카를 떠올렸다.
그 ‘사신’과 닮은 몬스터의 공격을 받아서 HP가 0이 된다면, 그도 의식 불명이 되는 것일까. 오르카처럼. 야스히코처럼.
뭐라도 해야 했었다. 그를 도와야 했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그때였다.
난데없이 소리가 들려왔다.
“책…… 책을 펼쳐..”
나는 무심코 주위를 둘러보았다.
“책?”
“강한 힘…… 어떻게 사용할 지에 따라 구원과 멸망, 어느 쪽이든 가능해.”
내 옆에 갑자기 거대한 책이 나타났다.
뭐지, 이건?
갑자기 강렬한 힘을 느꼈다. 낚아올린 생선이 날뛰는 느낌이었다.
들고 있을 수가 없어서 나는 책을 내던졌다.
책은 중간쯤 페이지를 펼쳐서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데이터 수열이 소용돌이를 치며 나타났고, 뱀처럼 뻗어 나와 내 몸을 휘감았다.
환각인가 무언가를 보는 거 같았다.
데이터 수열은 머지않아 나의 오른쪽 손목에 집중해서 겹쳐지더니, 선으로 구성된 「팔찌」같은 것이 나타났다.
나는 그 팔찌를 잡아당겨서 오른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팔 자체에 의지가 깃든 거 같았다.
앞에는 몬스터가 있었고, 양손을 들어서 검사를 때려잡으려고 했었다. 날아가 버린 자세가 좋지 않아서, 검사는 아직 일어나질 못했다.
몬스터의 칼과 해골이 검사에게 내려치기 직전, 내 오른손에서 눈부신 빛다발이 분출했다. 빛은 데이터 수열과 함께 레이저처럼 몬스터를 순식간에 관통했다.
순간 늦게 검사가 벌떡 일어나면서, 스쳐 지나가듯이 몬스터를 단칼에 내리쳤다.
방금 전까지 불사신이었던 게 거짓말처럼, 몬스터는 검게 돼버리면서 움직이지 않고, 소멸했다.
뭐지? 내가 지금 무얼 한 거야?
오른손을 보니, 팔찌는 사라져있었다.
검사가 나에게 걸어왔다. 내가 그를 보자 윈도우에 PC명이 표시되었다. 그의 이름은 발뭉크.
“방금 스킬……. 그리고, 그 PC 몸의 변화……”
이렇게 말하자 내 PC 몸이 어느새인가 초록에서 빨강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그래. 그런 거였군. 너, 해커인가.”
발뭉크는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해커와 바이러스는 어차피 같은 종류지. 이런 놈한테 도움받을 줄이야. 불쾌하군..”
내가 해커라고?
“아니…… 나 역시, 뭐가 뭔지……”
“시치미 떼지 마라. 최근, 『The World』 이곳저곳에서 컴퓨터 바이러스에 의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너 같은 해커들의 짓이다. 반 재미로 이 세계를 파괴하려는 녀석들을, 나는…… 용서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하면서 발뭉크는 나에게 검을 들이댔다.
“아니야! 나는……”
“네가 방금한 것은 뭐였지? 치트 말고는 다른 것도 아니다. 너는 해커다. 네가 원흉이다!”
대답하지 못했다. 방금, 내가 쓴 것은 오르카를 의식 불명으로 만든 사신이 쓴 것과 전혀 똑같은 스킬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내 옆에 있었던 블랙로즈가 스윽하며 앞으로 나섰다.
“잠깐, 당신! 도움받아놓고는, 이건 아니잖아!”
“뭐..”
“당신, 카이트가 없었으면 당했을 텐데? 그런데, 뭐냐고, 그 말투는!”
대드는 블랙로즈한테 발뭉크는 어리둥절했다.
그는 칼을 칼집에 넣고는, 우리를 노려보았다. 이름을 확인한 듯싶다.
“카이트. 그리고 블랙로즈인가. 네놈들의 말을 신용하는 건 아니다. 아직 파악하지 못했을 뿐이다. 놈들과 한패인 게 밝혀진다면 …… 그때는…… 반드시 죽이겠다!”
발뭉크는 발소리도 요란하게 밖으로 나갔다.
나와 블랙로즈만 성당 안에 남겨졌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