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소설 닷핵
인터넷의 탄생
인터넷의 역사는 1960년대부터 시작된다.
불과 반세기 전의 일이지만 인터넷이 성립된 배경에는 역사의 안개 같은 것이 끼여 있었다. 여러 가지 주장과 소문이 뒤섞여서, 진상을 밝힐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일설에 따르면, 이것의 발단은 미소 로켓 개발 경쟁에 있었다고 한다.
미소 냉전의 처음, 미국에는 여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미국은 원자 폭탄을 세게 최초로 개발하고, 그 뒤에도 수소 폭탄을 만들어 냈으며, 핵 개발 측면에서 숙적 소련을 압승했기 때문이다. 보유한 핵폭탄의 수에서도, 위력에서도 미국은 압도적으로 우위였다.
그런데 그런 미국을 깜짝 놀라게 한 일이 1957년 10월 4일에 일어났다.
소련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의 발사가 성공한 것이었다.
인공위성을 궤도에 쏘아 올릴 수 있을 만한 기술이 있다는 것은, 소련에서 미국으로 핵미사일을 꽂아 넣을 수 있는 기술이 있다는 게 된다.
이에 미국은 아직 인공위성 발사는커녕 제대로 날아가는 우주 로켓 개발조차도 성공하지 않았다.
즉, 소련에서 핵미사일 공격에 대해 전혀 아무런 대응 조치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이때 전 미국인은 깨닫게 되었다.
오늘의 인터넷은 이 「스푸트니크 쇼크」에서 탄생되었다. 당시 군은 다양한 정보 처리를 컴퓨터에 활용하여, 이 분야에서도 소련을 압도했다.
그러나, 이 컴퓨터 기술도 소련에게 핵미사일 공격을 받아버리면 잠시도 견디질 못했다.
핵의 고온으로 컴퓨터가 증발해버리면, 안에 들어 있는 귀중한 데이터도 순식간에 잃어버리고 만다.
여기서 핵 공격에 대한 방어책으로써, 네트워크의 연구가 시작되었다.
만일 핵 공격을 받았더라도, 컴퓨터 안에 들어 있는 데이터를 통신 회선으로 다른 컴퓨터에 옮길 수는 없는 걸까?
이것이 인터넷을 실현시키는 최초의 아이디어였다…… 인터넷 군사 기원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1969년 7월 20일, 미국은 아폴로 11호에 의한 인류 최초의 달 착륙을 완수했다. 그리고 그 해, 미국 국방부 고등 연구 계획국에 의해, 인터넷의 근본이 되는 ARPANT가 구축되었다.
(계속)